어린 시절, 나는 유난히 밤을 무서워했다. 친구들과 귀신 이야기라도 하고 나면, 집에 가는 골목길이 그렇게 멀고 어둡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빛은 무서움과는 다른 감정을 줬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끌림. 무섭지만 자꾸만 보게 되는 그 묘한 감정.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게 내가 처음으로 우주를 좋아하게 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중학교 1학년, 과학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보여준 다큐멘터리 한 편이 있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구 밖에서 바라본 푸른 행성의 모습과, 토성의 고리 사이를 지나던 탐사선의 영상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집에 돌아가 인터넷으로 ‘우주 다큐’를 검색했고, 그 길로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를 밤새도록 다른 은하계로 데려다 놓았다. 별빛은 나에게 공포의 대상에서 경이로움의 상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알게 된 사람이 칼 세이건이었다.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나는 과학이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시와 감정, 철학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언어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우리는 별의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의 말은 그 어떤 시보다 아름다웠다. 과학이 인간의 언어가 될 수 있다니. 그 이후로 나는 천문학이라는 단어 자체에 로망을 품기 시작했다. 매일 밤 책상 앞에 앉아 우주의 지도를 펼쳐 놓고 별자리와 은하의 위치를 외우곤 했다. 그리고 창문 밖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언젠가 진짜 우주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잠들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밤하늘을 직접 찍고 싶어졌다. 부모님께 간절히 부탁해 생일 선물로 중고 DSLR 카메라를 하나 얻었고, 삼각대를 짊어지고 매주 주말이면 교외로 나갔다. 혼자 별을 찍고, 긴 노출로 은하수를 담아내던 시간은 마치 나만의 명상 같았다.
어느 날엔 새벽 3시에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경외감 때문이었다. 그 밤은 아직도 내 인생에서 가장 조용하고도 깊은 시간으로 기억된다. 별 하나하나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고개를 들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이후로 나는 '우주를 사랑한다'는 말이 단순한 관심이 아닌 진심임을 알게 되었다.
대학교에서는 전공과 관계없이 천문학 교양 수업을 신청했다. 교수님은 NASA 출신 연구원이셨고, 수업은 항상 우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하루는 교수님이 말했다. “우주는 우리에게 해답을 주기보단, 좋은 질문을 던지게 만들죠.” 나는 그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우리가 우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법을 나는 우주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여전히 해답을 모르지만, 그 모름이 주는 자유로움에 감사하며, 오늘도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지금도 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생각이 너무 많아질 때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치 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무언가를 건네주는 것 같다. 그것은 어떤 말보다도 나를 진정시키고, 다시 나로 돌아오게 만든다.
때론 밤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스스로가 작아지고, 그 작음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세상의 걱정과 불안이 아주 멀리 밀려나가는 듯한 기분. 나는 그런 평온을, 우주가 아니면 어디서도 찾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많은 걸 모른다. 블랙홀의 구조도, 다중 우주의 가능성도, 외계 생명체의 실존 여부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좋다. 알 수 없기에, 더 알고 싶고, 그래서 계속 바라보게 된다. 우주는 내게 그런 존재다. 두렵고도 아름답고, 이해할 수 없지만 나를 끌어당기는.
내가 우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 삶의 모든 ‘질문’에 대한 출발점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답은 없어도 괜찮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그런 존재. 그것이 내가 지금도, 앞으로도 우주를 사랑할 이유다. 우주는 나에게 끝없는 질문이자, 영원한 동반자다. 언젠가 내가 늙고 지쳐 더는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곳엔 언제나처럼, 조용히 빛나는 우주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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